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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선 제22대 군주 정조, 유토피아를 꿈꾸다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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6199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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등록일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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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08-06-11 오전 8:17:58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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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조에게 가장 많이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‘이상주의자’다. 드라마 <이산>에서는 정조의 업적이나 명민함이 조연들에 가려져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, 정조는 분명 조선시대의 왕들 중 손꼽힐만한 천재였다.
정조의 어린시절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을만큼 암울했다. 11살에 아버지가 사도세자가 죽은 후, ‘죄인의 아들’이라는 꼬리표는 보이지 않게 늘 그를 따라다녔다. 정조의 이상주의적인 면모는 이런 현실도피를 갈구할만한 성장환경에서 탄생한 것인지도 모른다.
그러나 한국사를 공부할 때 줄줄이 외웠던 정조의 많은 업적에서 알 수 있듯이, 정조는 이런 이상을 꿈꾸는 데에서만 그치지 않았다. 자신의 몸을 바쳐서라도 백성과 나라를 위해 이런 꿈들을 하나씩 실천에 옮겨갔다.
대표적인 것으로 규장각을 들 수 있다. 그동안 신분에 얽매여 능력을 펼치지 못했던 많은 중인 특히 서얼들을 등용하고, 그들과 함께 조선의 부흥을 꿈꿨다.
그리고 시전상인들의 독점권을 혁파하는 신해통공도 있다. ‘중농억상’으로 간추려지는 조선시대의 산업정책에서 이 같은 정책은 가히 혁명이었다.
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‘동서양 건설의 절묘한 융합체’ 수원 화성도 빼놓을 수 없다. 화성 건설은 사도세자의 넋을 기리고, 한양에 터를 잡은 노론의 기반을 뒤흔들고,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꿈의 도시라는 점에서 정조의 일생의 목표와 한이 서린 유적지라고 할 수 있다.
그 밖에 일일이 나열할 수도 없는 많은 업적에서 정조가 꿈꾸던 이상세계를 엿볼 수 있다. 비록 이상향을 완성하지 못하고 1800년 승하했지만, 그가 꿈꾸던 이상은 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후손들의 가슴에 남아있다.
(출처)공무원저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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